번역가 김석희가 엄선하여 우리말로 옮긴
서양 시론의 대표적 고전 15편
인간이 처음에 언어를 사용한 것은 ‘의사소통’이라는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였다; 그 후 우리의 문화적 조상들이 언어에 미학적 쓰임새를 더함으로써 그 실용성을 더욱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시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그 순서가 역전되어, 시가 먼저 (노래와 함께) 생겨났고, 실용성이 그다음에 왔을 가능성도 물론 남아 있습니다. 예컨대 오지그릇도 원래는 장식이나 의식에 쓰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나중에 그것이 요리나 저장에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처음 두 단계의 순서가 어떻든 간에, 세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시가 된 언어’를 즐기게 되었지요. 음유시인의 가락에 실렸든 이야기꾼의 입담에 담겼든, 저 오랜 옛날 시를 짓고, 읊고, 듣는 모습은, 그 광경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신비롭고 감동적입니다.
이런 제작과 감상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는 해석과 평가와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실 시에 대한 연구 또는 이론의 역사는 시 자체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고 다양한 여정을 밟아왔습니다. 따라서 시에 관한 에세이도 수천 편에 이를 테지요. 그러니 ‘시학’이라는 이름의 성문법을 남겼다고 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시에 관해 논술한 첫 번째 사람도 아니고, 이 책에 실린 15편의 ‘시론’이 시문학에 대한 해석과 비평을 대표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쨌든 이 책에 실린 ‘시론’들은 고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수천 년 세월에 걸쳐 있고,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와 상징주의를 거쳐 초현실주의까지 펼쳐진 스펙트럼도 다채롭습니다. 내가 접할 수 있는 자료들 가운데 읽을 만한 것들을 골라 이렇게 한 권으로 엮어놓고 보니까, 그럴듯한 밥상 하나 차려놓은 듯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 김석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