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산은 경주의 보배라고 믿는다. 그의 예술세계를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 나는 그의 미술관 건립 사업에 힘을 보탰다. 비록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미술관은 설립되었다. 이에 앞서 소산은 경북도와 경주시에 8백여 점의 작품을 기증했고, 이를 토대로 하여 경주엑스포 공원 안에 솔거미술관을 건립할 수 있었다. 이 미술관은 경주의 보물로 빛날 것이다. ― 김관용(경북 도지사)
“불편함을 찾아 참된 예술의 길로” - 소산에게 더 불편한 것이 남아있단 말인가? 풍요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소산을 통해 그날을 생각하게 한다. ― 김종규(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대성(大成)이라는 이름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소산(小山)이라는 아호를 지었노라는 그의 겸허한 마음가짐이 작품에 녹아들어 그렇게 큰 세계를 성취해가는 것이리라. ― 김후란(시인·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소산은 전통문화를 살리면서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려 하니, 그는 분명 우리 시대의 보배가 아닐 수 없다. 서화일체의 전통을 실행하고 있는 소산, 그와 함께한 세월은 소중하다고 본다. ― 성파(스님)
그의 눈빛은 늘 먼 산을 바라본다. 아니 나는 그렇게 보인다. 그래서 우리 동네 삼청공원에 가도 거기 그가 바라보는 먼 산이 보인다. 아니 어디서나 그의 먼 산이 있다. ― 신달자(시인)
소산 선생님을 만나고 나에게 변화가 생겼다. 먹의 향이 좋아졌고 붓의 움직임이 좋아졌다. 화선지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재미에 빠졌다. ― 유준상(배우)
옛적 신라의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짓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지었듯이, 오늘날의 소평 박대성은 화선지 위에 장엄한 불국사를 짓고 석굴암의 본존불과 십대 제자를 모셔 한 시대의 광기가 그의 어린 영혼에 남긴 상처를 지워 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 이문열(소설가)
나와 소산은 30대에 만나 70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러 같은 노인이 되었지만, 소산 선생은 아직도 젊다. 눈도 밝고, 귀도 밝고, 이도 튼튼하고, 다리의 힘도 좋아 앞으로 백수(白壽)는 무난하리라 생각된다. ― 이왈종(화가)
소산 박대성 화백, 그의 이름을 부르게 되면 많은 상념이 교차하게 된다. 여러 가지 단어가 떠오르지만, 어쩌면 ‘평생 동행’이라는 말이 머리를 장식할 것 같다. 그만큼 소산 화백과 가나아트는 함께한 시간이 많았다는 뜻이고, 또 이와 같은 상황은 지속될 것이다. ― 이호재(가나아트센터 회장)
호는 소산이라고 하고서 마음속의 대산(大山)을 깊숙하면서도 오묘하게 펼쳐 보이는 장관을 거듭 만나면서 감탄했다. 오랜 기간 동안 뻗어난 거작 산맥이 눈에 선하다. ― 조동일(서울대 명예교수)
만인을 찬탄케 하고 시공을 뛰어넘는 예술의 힘 그 가슴 뛰는 감동과 감격을 소산 박대성의 작품에서 봅니다. ― 허영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