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시집이다! 동양시학에서 시화일치론이 있듯이 정태경 시인은 ‘디카+시’ 라는 단순함을 넘어 독특하고 쓸쓸하고 따듯한 풍경을 열면서 시어는 간결해지면서 더욱더 시의 눈을 또록또록 뜨게 하고 있다. 정태경 시인의 시집 『지금 사랑해』에 관한 발문은 구광렬, 전동균, 유홍준 시인이 썼고 손진은 교수의 작품해설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사진 속에 글이 있고 글 속에 사진이 있다.
사진 속 글의 행간이 되는 詩.
글 속 사진의 배경이 되는 詩.
내포와 외연이 은유로만 존재한다.
17세기 께베도(Quevedo)의
機智와 맞닥뜨릴 수 있는 연유이기도 하다.
- 구광렬(시인 ? 울산대 교수)
삼십여 년 전 까까머리 고교생 시절에 만난 정태경 선배는 물이 차면 물잔이 되고 술이 차면 술잔이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눈이 살짝 감기던, 늘 타인을 껴안아주던 너그러운 웃음은 아마도 형이 살던 동네의 돌부처를 닮아서 그런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바람 부는 세상의 많은 시간을 훌쩍 건너 펴내는 이 시집엔 고독과 위트와 성찰이 함축된 언어 속에 담겨 있다. 그 언어들은 소외되고 보잘것없는 것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연민의 빛으로 반짝인다.
- 전동균(시인 ? 동의대 교수
정태경의 시와 사진은 익숙하다. 아직 외국엘 단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나는 여전히 이국의 풍경보다는 우리네 풍경이 좋다. 정태경은 이 익숙하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우리 앞에 펼쳐 보임으로써 교감하고 공감하고자 한다. 이 익숙한 것들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머뭇거려 보았던가? 기회가 되면 정태경의 사진 속 한 풍경 앞에 발끝을 모으고 오래 멈춰 서 있어 보기를 기대한다.
- 유홍준(시인)
시와 영상이 놓인 자리
정태경의 이번 시집은 영상을 동반하고 있다. 이 영상은 그 속성이 요즘 시단에서 수용되고 있는 디카시에서의 영상과는 조금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다. 디카시는 모든 것을 0과 1로 환원시키는 싸늘한 디지털 미디어에, 사물에서 촉발되는 감흥을 시적 언어로 재현해 인간적 온기를 불어넣는 감성의 언어를 추구한다. 그것은 디지털 미디어의 진화가 만들어낸 산물로서 디지털카메라가 생산해낸 사진에 무게중심이 더 많이 쏠려 있다. 즉, 디카시는 사진을 바탕으로 시적 텍스트가 생산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정태경의 영상 시에 이르면 그 양상이 달라진다. 정태경에게 있어 시는 영상이 잡아낼 수 없는 진실을 찾아내고, 때로 그 반대로 영상이 시로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진실을 함축하기도 한다. 사진과 문자, 영상과 시가 상호작용하면서 미학성을 한껏 높인다. 사진에는 시적 문맥으로만 찾아낼 수 없는 시적 진실에 오롯이 존재하고 반대로 시에는 사진에서 포착할 수 없는 진실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이 정태경의 영상시에는 있다. 이렇듯 정태경의 시와 영상은 서로를 비춰주고 상승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 영상과 시의 결합양상을 보도록 하자. 정태경은 말의 완급을 아는 시인이다. 길고 진중한 시가 있는가 하면 짤막하나 촌철살인 하는 시도 있다. 시가 짧고 쉽다고 해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짧은 시들이 더 많이 눈에 밟힌다. 예컨대 「호치민 이야기」같은 시!
아침을 쏟아놓은 반도
오
오
오
오
토바이
선명한 이미지의 제시를 넘어 형태시의 형상을 띠고 있다. 잠에서 막 깨어난 호치민 시는 도로에 급류처럼 쏟아져 나오는 오토바이의 물결로 꿈틀댄다. 그 오토바이는 속도를 더하면서 아침이라는 시간이 뻗어 나가는 듯하기도 하고, 그 시간은 고여 있던 공간을 풀어놓기도 한다. 살아 꿈틀거리는 아침 이미지는 영상을 통해 효과가 배가되는 것이다. 오토바이가 막 쏟아져 나오는, 오 오 오 오 네 행으로 배열된 ‘놀람’의 인상과 오토바이 떼의 형상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이런 시는 영상시 형식을 취하면서 실감이 손에 닿을 듯하다. 시의 형식과 내용은 영상의 형태와 서로 상승작용을 하면서 예술성을 끌어올린다. 이것이 정태경이 영상을 시에 데리고 오는 이유가 된다. 그래도 이 시에서는 영상이 우위에 있는 경우가 된다. 아래 시는 어떤가.
술 취한 어둠이 누웠다 간 자리
구름은
헹구다 만 서울 하늘 걸어놓았다
-「쪽방」전문
침대 하나 작은 책상이 하나, 그리고 화장실이 딸린 좁은 공간에는 가난한 한 인간의 체취가 눅진하다. 때가 절어 세면대에 걸쳐진 걸레는 “서울 하늘”을 다 헹구어낼 수는 없다. 그것을 시인은 “구름은/헹구다 만 서울 하늘 걸어놓았다”로 묘파해낸다. 낯설고 힘든 곳에서 지쳐서 혼자 힘겹게 살아가는, 그래서 때로는 술을 마시고 곯아떨어지는 작은 공간 속의 개인을 시인은 영상의 힘을 빌려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확실히 영상의 작용이 없었다면 이런 깊이 있고 함축적인 주제는 끌어올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상과 시는 서로를 일으켜 세워 문학성을 견인하는 힘이 된다. 이 시 역시 영상과 주제가 잘 녹아 있는 시편이다. 엄밀히 말하면, 앞의 시와는 다르게 주제성이 약간은 우위에 있다. 정태경의 영상을 동반한 시들은 이 두 편의 시에서 보이듯 영상과 주제성의 상호작용이라는 측면에서 때로는 영상이 우위에서 시를 견인하고, 때로는 주제성이 우위에서 영상을 견인하는 미세한 편차 속에서 존재한다. 말하자면 영상과 주제성은 맞은편에서 서로를 조응하고 비춰주는 거울과 같은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손진은(시인, 경주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