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물 속에 하염없이 던져져 있다고 생각한다. 크게 기분 나쁠 것도 없고, 또는 크게 투정 부릴 일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사는 게 희망인 것처럼, 그렇게 살아간다. 나의 일과는 대체로 정해 있다. 나는 다소 느릿하게 움직이면서 또 다른 하루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나는 가끔 심심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거울 속을 들여다본다. 거울 속의 나는 정직하게 팔십을 바로 앞둔 나를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나의 머리카락부터 이마, 얼굴, 가슴, 배, 손과 발 등이 하얗게 드러난다. “그래, 내 나이만큼 늙었지. 늙는다는 것은 순응하는 것이라니까, 틀림없이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내가 있겠지. 어떤 사람들은 늙음을 거역하기라도 하듯 몸매에 신경을 쓰는 이들도 있는데 나는 손등에 드러난 주름들을 껴안고서라도 열심히 살아갈 거야.”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쓰고 있는 시에 대해서 간략하게 생각해보기로 한다. 나는 지금까지 절제된 정서와 명징한 이미지, 따스한 관념 등에 의해 작품을 써 왔는데 후회하질 않는다.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우리들 인간에 대한 고통과 불행을 시로서 표현해보고자 하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없는 사람, 소외된 친구, 상처받은 이웃들이 그 대상이었다.
이수익
1942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부산사범학교를 거쳐 서울대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 그 이후 동인지 『현대시』에 들어가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저서로는 1969년 첫 시집 『우울한 샹송』을 펴내고 이어서 『야간열차』 『슬픔의 핵』 『단순한 기쁨』 『그리고 너를 위하여』 『아득한 봄』 『푸른 추억의 빵』 『눈부신 마음으로 사랑했던』 『꽃나무 아래의 키스』 『처음으로 사랑을 들었다』 『천년의 강』 『침묵의 여울』 등 12권을 펴냈으며, 시선집으로는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불과 얼음의 콘서트』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한국시협상, 지훈문학상, 공초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부산시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2000ik@hanmail.net
1부
포커페이스·12 생존·14 잠시 지나가는·16 나를 낳으실 제·17 돌멩이 하나·18 벼랑 끝에 잠들다·20 성게·22 괴물·24 누드화·26 죽어도 좋아·28 움직이는 사막·29 불가사리·32 생명·34 골목길·35
그런 새벽에·64 사라졌다·66 빚·68 클로즈업·70 귀머거리·72 아마도 그럴 거야·74 어머니·77 나의 자유·78 잡초·80 모서리가 불안해·82 몇 마디·84 떠나야 할 당신·85 숲은 유령처럼·86 풍진세상·88
4부
여백·90 화음 한 줄기·92 영화 팬·93 함께 놀았다·94 행복·96 빗줄기 속을 헤치면서·98 셔틀콕·101 굴욕·102 아마존의 슬픔·104 슬픔이 얼굴을 덮고서·106 비둘기 죽음·108 두 손에 대하여·110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112 오, 일곱 개의 포도 잎과·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