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 박기섭 시인을 처음으로 만났다. 물론 시집을 통해서였고,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그 첫 만남의 신선했던 충격을 오랫동안 간직하다가 지난봄에서야 어떤 사화집에 쓴 글에 그때 읽었던 작품 중에서 언급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 글을 쓰면서 참으로 오래 간직했던 묵은 빚을 조금은 갚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첫 만남으로부터 10년 동안 일관된 자세를 보여주었던 그의 뛰어난 작품에 대해 필자는 끝내 독자로서 안주할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길을 가는 한 사람으로서 마냥 그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보다는 어떤 형태로든 얘기할 의무 같은 것을 강하게 느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정작 실제의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 필자는 인색하고 게을렀다. 부끄럽다. 이러한 마음을 그는 이미 간파했던 것인지, 첫 시집의 말미에 이 글을 보태게 하였다.
- 박시교(시인)
박기섭
1954년 대구 달성 마비정에서 태어나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한추여정閑秋餘情」으로 등단하여, 1983년부터 <오류>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시집으로 『키 작은 나귀 타고』 『묵언집默言集』 『비단헝겊』 『하늘에 밑줄이나 긋고』 『엮음 수심가愁心歌』 『달의 문하門下』 『각북角北』 『서녘의, 책』 등이 있고, 박기섭의 시조산책 『가다 만 듯 아니 간 듯』 등이있다. 오늘의시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이호우시조문학상, 고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