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화 시인은 시집 『오래된 잠』에서 화자 자신을 시적 대상으로 하는 시에서 ‘나’에 대해 성급하게 말하거나,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며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낯선 이미지들로 덧칠하지 않고 신중하고 신중하게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꿈이 여타 시인들의 꿈처럼 ‘현실 → 미래’라는 방향성을 갖지 않고, ‘현실 → 과거’라는 방향성을 갖는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역행의 방향성을 갖는 것은 그만큼 이민화 시인이 ‘자신’에 대해서 더 엄격하고, 단단하게 다가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라는 존재의 의미는 어느 방향을 지향한다기보다는 깊이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 정찬일(시인)
우물 속에 있던 금붕어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혼 후 제주도에 살면서 시를 쓰는 시인 이민화. 그녀는 첫 시집을 내면 더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 말은 단호했는데, 그 말의 이면에는 시에 대한 애증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나는 십 년 가까이 동인 활동을 함께하면서 눈치 챘다. 그녀는 따뜻한 이야기도 차갑게 쓰는 재주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겉만 차가울 뿐 속뜻은 큰누나처럼 따뜻하다는 걸 그녀의 시 몇 편만 읽어보면 금방 알아챌 수 있으리라. 우물 속 금붕어처럼 입을 끔벅이며 시를 써온 그녀. 이제 그 금붕어가 먼바다를 향해 헤엄쳐나가려고 한다. 혹독한 환경에서 금붕어는 계속 힘들게 시를 쓸 것이다. 그리하여 금붕어의 지느러미에 물의 손가락 같은 시가 새겨질 것이다.
- 현택훈(시인)
그녀는 없는 계절 밖에서 오래된 잠을 잔다. 검은 봉지 속으로 걸어 들어가 수신되지 못한 발칙한 상상을 하고, 없는 계절 속에서 한 권의 시집이 된다. 검은 봉지 속에 봉인된 그녀의 심연, 그 끝에서 몸속까지 시퍼런 멍처럼 파고든 시편마다 ‘콩국의 비릿함’을 내 뿜지만, 한 번도 배불러 본 적 없었을 시간이 툭 던져놓은 감자 같다. 단정하면서도 차분한 그녀의 시편을 읽으면 읽을수록 식물성 슬픔이 느껴진다. 몇 날 며칠 동안 “오래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낼 듯/ 손톱 끝의 시간은 고집스럽게 뾰쪽”한 시간을 지나 긴 잠속을 걸어 나온 이민화의 시편들이 여기에 있다.
- 안은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