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명의 시는 한 마디로 달관한 도인의 생활을 엮은 시라고 여겨질 만큼 농익은 삶을 노래한 작품이라 하겠다. 세속에 찌든 오늘의 세상에게 후련하게 심호흡을 하면서 흥얼거리면서, 읽을 수 있는 농익은 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시에는 기교보다, 삶의 훈훈한 노래가, 해탈에 가까운 흥얼거림이 우리들의 마음을 씻어주고 있다 하겠다. 맛을 즐기고 싶은 달콤한 시라기 보다, 언제나 혀끝에 굴리면서 생활의 내성을 키워가는 시라고 생각된다.
생활의 내공을 키워주는 시라면, 화자의 이만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도 드물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더 좋은 시, 많이 써서 우리들의 마음을 살찌게 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 하길남(문학평론가)
이원명 시인의 시는 깊은 불심 위에 활짝 핀 만다라와 지극히 그리운 어머니로 귀결한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가령 불심을 설명하지 않아도 사소하고 아름다운 꽃들을 통해서 광대무변한 불심을 웅변하다. 시집 『즈믄 날의 소묘』 시편들이 일관되게 향하는 불심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꽃을 통하여 노래한 점이 이 시집의 미덕이다. 자칫, 불자나 불교를 안다고 하는 이들이 저지르는 경박한 득도得道 의식을 배제하고, 꽃을 통하여 어머니로 귀결되는 그리운 서정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시 「꽃 양귀비」에서 “- 씻김굿으로 한참을 노닐더니// 생전의 울 어머니/ 홍조로 너울거”리는 꽃을 통하여 어머니를 만나는데, 이는 불심을 통하여 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적막의 자작나무, 그 원시림과/ 한없는 초원을 돌아/ 몇 그루 고사목은 허무를 떨치고 여여하다”(「백두산 천지는 고요하다」). 이 시에서 펼쳐진 진신사리 같은 고사목은 드디어 속진을 벗어나 일체를 이룸으로써, 한 소식을 이루는 시인의 생에 대한 침잠(沈潛)이 예사롭지 않다. “적멸에 적멸을 얹고// 온전한 사리 앞에”(「적멸보궁」) 선 시인의 각오는 꽃(만다라)을 경작하여 시를 쓰는 수행이라 할 수 있다. 이원명 시인의 표제시 「즈믄 날의 소묘」에서 노래한 미망의 밤길에도 부처를 호출하며, 빛나는 북극성과 북두칠성의 정거장 한 모퉁이에서 쉼표를 찍으며, 다시 쓸 새로운 시를 벌써 기대해 본다.
- 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