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선님의 시에서는 빛이 들리고 소리가 보인다. 그 빛과 소리는 자연의 노래 같기도 하고 영혼의 속삭임 같기도 하다. 사람의 노래를 자연이 속삭여주는가 하면, 자연의 몸부림에서 사람의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자연의 빛과 사람의 노래가 시적 형상화를 거치면서 절묘한 화성으로 독자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 시로 승화된 것이다. 세계에 귀를 열어 세계를 듣는 시인의 소산임을 쉬 짐작하게 하는가 하면, 자연의 아픔을 사람의 사랑으로 휘감기도 한다. 그의 시는 진술과 묘사와 메타로, 자연의 무위無爲가 사람의 행위로 변환, 시적 미학으로 육화 직조되어 있다. 이는 사람의 아픔을 자연의 사랑과 교통시켜 시로 풀어내는 시인이 정영선이기 때문이리라. 그의 시에는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노래와 인간을 노래하는 대상 모두가 시적 상상력 안에 흔적 없이 용해되어 있다. 그것이 응집력과 자력의 동력이 되어 독자의 안도한 시선을 끌어당기는 힘으로 작용한다.
정영선은 견자의 눈과 귀를 가진 시인이며, 사물을 시로 승화시킴에 능할 뿐만 아니라, 짧은 호흡으로 긴 여운을 던지는 시인으로 당당하다. 이 모두가 결핍으로 구멍 난 우리들 가슴을 존재결핍으로 바라보는 넉넉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 정영선 시인이 일궈낸 결과물이면서 빛이 아니겠는가.
- 홍진기(시인)
바람의 시인 정영선은 바람으로 새로운 시어를 만들고 있다. 「바람새로 우는」 시는 ‘바람새’를 통해서 다양한 바람의 축제를 벌인다. 그런데 ‘바람새’라는 말이 있는가? 바람의 전도사로서 바람을 낳는 정영선 시인을 통해서 태어난 시어다. 물고기가 물의 화신이라면, 새는 나무의 화신일 텐데, 어찌하여 바람이 생산한 게 새가 되었을까. 천변만화의 바람이 변신하는 건 다양할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기에 더욱더 상상력은 확장되고 있다. 거기에 바람의 혼이 울고 있다. 애니미즘으로 본다면, 모든 사물에 영혼이 내재하고 있다. 굳이 종교를 떠나서라도 바람에까지 영혼의 숨결을 불어넣는 시심詩心은 얼마나 웅혼한가. 그녀가 거느리는 바람의 군단들도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더러는 허무주의의 바람도 있다. 그러나 허무까지 거둘 수 있으므로 정영선표 바람은 더욱더 확장되고 깊어진다.
- 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