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채의 시들은 새로운 서정이라 부를 만한 독자적인 시정詩情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 시집들이 견고하면서도 내밀한 서정을 보여주었다면, 이번의 시집에서는 자신과 가족, 이웃들의 지난 삶을 오늘의 시점에서 풀어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는 좀 더 넓은 세계와 교신하려는 그의 시 세계의 변모를 추론하게 한다. 그 스토리 속에서는 가볍지 않은 감각과 유머와 여유, 기지와 해학들이 어우러지면서 대상을 넓게 품어 안으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우선 이번 시집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으로 우리가 고찰할 수 있는 것은 에로티시즘과 결합된 관계적 사유, 생태철학 같은 것이다. 그의 서정의 자장 안에는 모든 존재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관계망을 향한 풍요로운 상상력이 깔려 있다. 그런 열린 시각이 이번 시집의 시편들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서정을 만들어 가고 있다.
- 손진은(시인·경주대 교수)
시의 사물성은 모든 사물과의 시공적 관계, 인과 관계로서 특징 지워지고 규명된다. 류인채의 시에서 드러나는 시적 성상들이 그러한데 이러한 것은 “새벽의 속살은 푸르고도 불그스름하”여서 “심해를 거슬러” “뭍”에 오르고 “문득 열린 바다 문”이 되어 “산홋빛 둥근 혀 하나 낳”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이것은 그의 시가 사물이 지니고 있는 실체적 표상 저 너머에서 존재하는 본질적 세계를 구체적 대상을 통해 구현하고 대상의 근원적인 세계와 동일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그의 시를 통해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서성거리고 끊임없이 사물들과 내통하기를 염원하는 것은 그에게 사물은 사물인 동시에 언어이며 존재이기 때문이고 사물들의 말을 훔치기 위함이다. 그의 주위에 있을 따름인 모든 관념과 사물들은 비로소 이번 시집의 시를 통해 스스로 그 존재를 드러내고 끊임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존재와 존재자-형태를 갖지 않은 것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 이것이 이번 시집에서 그의 시가 가지고 있는 존재의 내포성이고 의미이다.
- 주병율(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