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자의 시는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대비 혹은 극대비가 전혀 대비 혹은 극대비 아닌 듯 그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삶의 세계’와 삶 자체의 일상 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절묘한 원융을 이루고 있었는데, 항용 시라는 것이 정답이 없는 바 소위 ‘창조적 오독’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시가 좋은 시라면 그리하여 시는 다 그 시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시 밖’에 있는 것이라면 유정자의 시는 다 시 밖에 있었다. 시적 발화에 있어서 사물의 속성에 의존한 그 모든 일방적 맹목적 ‘화자 우월성’의 그 시 안에 시가 있는 그리하여 그 시 안에서 어떤 지적 가치를 형상화 시키고 의미화 시켜야 한다고 믿는 그 모든 문자 의존의 시에서 그의 시는 시를 순간 시 밖에 놓이게 하는 경쾌함을 보인다.
- 김영승(시인)
유정자 시인의 첫 시집에는 모성에 대한 자취로 가득합니다. 「자서」에서 밝힌 대로 “긴 잠에서 깨어나 잠시 내 볼을 쓰다듬고 가신 어머니 손길”이 시인의 상상력을 뒤척이게 만들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런 어머니의 손길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발자취”(「무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여정은 삶으로서도 시로서도 많은 대상들을 기웃거리고 방황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 여정이 또 다른 산고를 겪으며 모성의 새로운 결실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해 봅니다.
- 이경호(문학평론가)
유정자 시인의 첫 시집 『무늬』의 특징은, 시적 화자의 파란만장했던 삶의 여정과 앞으로 펼쳐질 시인의 길을 예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의 화려함과 이어지는 나락의 낙차를 풍찬노숙에도 아랑곳없이, 다시 숨을 고르며 힘차게 환한 아침을 속삭인다. 이렇게 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건 “열정을 뿜어냈던 자리/ 무늬가 곱다”(「무늬」)고 한 것처럼, 오히려 시련과 상처의 의식을 열정으로 승화한 시인의 신념과 넓은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한편, 유정자 시인은 천지간에 유랑하는 고아로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마술 같은 시편들을 선보인다. “우물물을 뒤집는/ 통곡 소리/ 잠이 깨어 나가 보니/ 장례식장/ 담장 밖으로/ 눈빛 맞추는 대추”(「때」)와 만나면서, 죽음은 야무지고 군더더기 없는 대추로 환생한다. “바다로 간 엄마/ 노심초사 노잣돈 걱정 없이”(「유랑」)와 “아침저녁으로/ 투명하게 딸을 보시려고/ 유리창/ 닦고 계신 어머니”(「유리창」)는 이승과 저승의 격의 없는 넘나듦이며, 애절한 연민을 불러온다. 다정도 병인 양하지만, 이미 첫 시집보다 훌쩍 더 커버린 유정자 시인의 다음 시집이 기다려질 뿐이다.
- 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