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윤 시인의 시적 발상은 자신의 체내에서 우러나오는 소중한 진실에 가장 근접하게 가까워져 있다는, 그런 믿음 때문일 것이다. ‘없는 것은 없다’고 그대로 말하기보다는 ‘없는 것도 있다’는 시적 진실에 한층 더 근접하려는 노력들이 작품 요소요소에서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성숙된 자세와 목소리로 말한다. 자신의 지나간 상처와 불운, 고통과 폐허를 견뎌내고 이기면서 “내일은 목련 봉우리에 불을 댕겨 활활 타오르는 봄의 창을 생각하자”(「3월의 풍경」)는 굳건한 믿음의 정신으로 시를 쓴다고. 그에게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새로운 창조의 자극이요 핵심이다. 작품 곳곳에서 피어나는 향기로운 메시지가 이들을 대변한다. “산 아랫마을에선 소식 좀 전하고 살자는 편지가/ 오늘쯤 도착할 것 같다”(「푸르고 가는 어린 잎사귀들이」)는 섬세한 기다림이 김정윤 시인에게는 어울릴 것 같다. 마치 정갈한 마당을 바라다보듯.
- 이수익(시인)
김정윤 시인은 환한 어둠을 노래하는 시인이다. 검은색에서 빛을 발현하는 독특한 화법을 가졌다는 뜻이다. 대다수의 보편적이고 따뜻한 서정시의 특징을 거부하고, 소멸 직전의 회광廻光의 시안詩眼으로 대상들을 포섭하고, 가혹하게 연대한다. 시집 『바람의 집』을 관류하는 시편들은 지상의 절망 혹은 죽음에서 처절한 각혈을 하며, 인고의 시간을 되새김질한다. 하여, 김정윤 시인의 시적 고통이 자리하는 공간은 견고한 마그마의 시간을 견디며 피어나는 꽃이다. 그러나 “모서리마다 살점 떨어지는 오늘과/ 안으로 여미는 생각의 끈 어디쯤/ 끈적한 알몸 위로 푸른 이끼 올라”(「못생긴 돌」)오듯, 몸과 마음을 통과한 소식들은 푸른 희망으로 자라나고 있다. “주산지의 왕버들은 해가 지기 전/ 죽은 자들의 이마에 생피가 돌 듯/…/별자리마다 세상의 모든 꽃/ 피어나게 해”(「푸르고 가는 어린 잎사귀들이」) 달라고 하듯, 시인은 죽음을 통해서 삶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죽었던 적이 있기에, 죽어도 없어지지 않을 뜨거운 시정신이 또록또록 살아있다.
- 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