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의 시는 사물의 급소를 찌르는 언어의 선명성과 아름다움에서 단연 빛을 발한다. 이번 12번째 시집에서는 그것과 더불어 성찰적 비애 의식을 보여주는 시편들이 여럿 보인다. ‘욕망’과 ‘좌절’(「그만큼의 높이, 드론」)의 풍경을 통해 삶의 해방구를 성찰하기도 하고, 육탈한 ‘뼈’ 앞에서 ‘울음’(「견고한 뼈」)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비애 의식이 보여주는 시적 아름다움은 ‘불꽃’(「불꽃, 끝없이 타오르는」)의 생명성과 만나면서 엄숙과 외경의 경지에까지 이른다. 인간 삶과 존재의 근원을 선명한 이미지로 꿰뚫는 이 시집의 시편들은 ‘은밀하게 챙겨주고 싶은 조그만 비밀’(「비밀을 보이다」)을 가진 선생만의 정신세계가 빚어낸 깊은 울림의 결실이다.
- 배한봉(시인)
그의 절정이다. 뭉클하다. 그의 시에서 ‘마지막’이라는 최종 심급은 수사를 넘어 그대로 우리에게 육박해온다. 그의 언어는 처음 이전의 것들을 거느리는 적층의 언어이며, 고통과 황홀의 운동을 거듭하는 들끓는 슬픈 언어이다.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침묵 가운데서 터져 나온다.
시인은 자신을 지배하는 ‘보다 더 커다란 믿음’에 이끌리고 응답하기 위해 죽음의 지대를 건너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보고 듣고 말하는 것 너머의 모든 것, 그 최초의 이전으로 돌아가 다시 허물고 세우고 이륙하기. 쓰러질 듯 거듭 피어나는 불꽃처럼, 무한 몰락하고 무한 상승하기.
뼈의 결기로 무장한 언어는 절망으로 충만하고, 그의 거친 힘줄들은 여전히 열렬하다. 침묵의 여울을 따라가다, 당신은 눈부시게 부서지는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시작하지 않겠는가. 죽음의 대륙을 넘어 또 다른 대륙을 향해 이륙할 시간이다.
- 주영중
이수익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부산사범,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현대시> 동인 활동을 했다. 시집으로 『우울한 샹송』 『야간열차』 『슬픔의 핵』 『단순한 기쁨』 『그리고 너를 위하여』 『푸른 추억의 빵』 『눈부신 마음으로 사랑했던』 『꽃나무 아래의 키스』 『처음으로 사랑을 들었다』 『천년의 강』 등과 시선집으로 『불과 얼음의 콘서트』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한국시협상, 지훈상, 공초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부산시문화상(문학부문)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