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외곽의 바람에 밀려/ 까실한 속살만 태웠지/ 길 잃은 햇살이라도 붙잡고/ 다소곳이 꽃 피우고/ 진솔하게 열매를 떨어뜨려 보았나/ 이제 그만 뿌리로 내려앉지/ 그 밑동으로 더욱더 내려가/ 긴 수면의 세월을 보내고/ 참새들 똥에 묻혀 부활의 홀씨로 살아나/ 영생의 순리를 터득할 때까지/ 깊은 뿌리로 내려가지/ 지상의 오랜 시련은 오래 참을수록/ 새로운 각오로 새겨지는 걸/ 삭풍에 지친 속살을 묻어/ 따순 수맥과 만나는 불멸의 연대를 위해/ 오로지 안으로 파고드는/ 지순한 사랑으로/ 박토를 애무하는 뿌리의 근성으로”(「뿌리의 근성으로」 전문)
인생의 후반기에 고향으로 돌아와, 박토를 애무하는 뿌리의 근성으로 고향과 ‘불멸의 연대’를 맺고자 하는 김성도 시인의 태도는 믿음직스럽다. 그러나 그 ‘불멸의 연대’마저도 다 지나가 버리는 ‘인생의 한 때’임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기에 시인은 스스로 자유롭고 여유가 있다. 그 여유와 자유 속에서 ‘그대 대문 없이 살아도 된다’는 시구는 시인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다짐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고, 또 내가 시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 또 내가 가지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 이남호(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김성도 시인의 시집 『벌락마을』은 실화 속의 동화를 안고 사는 마을이다. 청명의 하늘 아래 메루와 마블이 천년 한지를 만드는 건 사랑을 잉태하는 것이고 영원한 사랑을 기원한다. 쉽사리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을 현실에서 구현한 것은 시인의 끈질긴 집념과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시인은 대상과 접신이 되어 허공의 풍경마저 끌어내어 벽에 걸거나 산들바람이 문턱을 밟고 가는 것도 놓치지 않는 혜안과 청초한 풍경소리 지그시 귓밥을 무는 득음의 경지까지 들락날락한다. 또한 만공의 허무로 팽팽한 가난한 창자 바닥까지 내려가 비우는 마음조차 비우는 한 소식에 이른다. 시집 『벌락마을』은 다종다양한 서사로 서정의 끈을 놓치지 않고 죽림의 의기까지 수용하고 있다. 하여, 김성도 시인의 『벌락마을』의 영토는 밤도 차츰 밝아지고 내일의 지평을 열고 있다.
- 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