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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순한 뿔 (황금알시인선29)
지은이 : 장인수
출판사 : 황금알
발행일 : 2009년 9월 25일
사양 : 96쪽 | 128*210
ISBN : 978-89-91601-68-0-03810
분야 : 황금알시인선
정가 : 8,000원
하늘과 대지 사이에는 봄마다 흙의 각질을 뚫고 튀어나오는 혀가 있다. 이 혀는 사방팔방에서 기어 나온다. 마당 가장자리를 핥는 “노을의 붉은 혀”(?어느 짐승의 시간?)가 있고, 달의 혀는 “지구의 고독한 골목을 핥으며”(?후미?), “저녁 천수만의 혓바닥은 신열로 들끓”(?오리떼의 비상?)고, “아스팔트의 혀는 타이어를 정신없이 핥”(?혀?)고, 망당대해에는 망망대 ‘혀’가 해안선을 끊임없이 핥으며 열람한다(?망망대혀?). 이 혀는 야성의 혀, 말하는 혀, 울부짖는 혀, 칼이 되어 세상을 베는 혀, 애정행각에 여념 없는 혀들! 우리는 어찌 저마다 혀가 아니랴. 혀는 수십 마리 나비 떼로 펄럭이고, 날벌레로 춤추며, 벌떼로 공중 선회를 하고, 꽃잎으로 흩날린다(?수화?). 이 혀는 대지를 핥아 열람하는 눈이며, 욕망으로 세계를 더듬는 손이고, 핥으며 사유하고 상상하는 뇌다. 시인의 혀는 불순한 세상과 대거리하며 들이받는 초식동물의 “온순한 뿔”이다(?온순한 뿔?). 시인은 그 뿔로 세상을 천방지축으로 들이받다가 지치면 “울음 곳간” 한 채를 짓는다. 이 시집은 혀의 시집이고 “울음 곳간”의 시집이다. 어느덧 대교약졸(大巧若拙)이 뭔가를 눈치채버린 이 젊은 시인에게 술 한 잔 사주고 싶다.
- 장석주(시인)

저수지에 돌멩이 하나를 던져 수면에 동그란 파문이 파르르 생겨나는 흔적을 ‘正鵠’이라 명명하는 시인은, 스스로 ‘중심’을 내어주는 저수지의 존재를 통해, ‘중심’을 내던지고 새로운 ‘중심’을 설정해가는 자신을 유추한다. 그가 격정적으로 만나고 헤어지고 시로 쓸어안은 모든 존재들이 사실은 그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正鵠’은 고요한 수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울음’의 견고한 결속으로 구성된 역동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는 “바람의 혈통”(?바람, 바람, 바람?)과 “바람의 관절”(?바람의 직계?)을 지닌 채 힘겹게 “바람의 유폐지”(?수평선?)에 다다르는 도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그 노마드적 흐름 속에서, “울음 혈관”(?암흑?)에 “저 혼자 저렇게 뜨거워진 울음”(?물갈퀴?)을 담고는 “늑대처럼 울부짖으며”(?나는 아주 나쁘다?) “울음을 쏘는 길”(?늑대?) 위에 오랫동안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을 여러 차례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고독하고도 절실한 ‘울음’들은, 시인의 몸 안에, 소진을 모르는 “울음 곳간”(?울음 곳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바람’과 ‘울음’의 유목이, 이번 시집을 격정적으로 펄럭이게 하고, 끝 간 데 없이 흐르게 하고, 장인수만의 천진성과 야성으로 물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