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자 시의 강점 중 하나는 ‘구체성具體性’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시인은 구체적인 표현을 선호한다. 그녀는 ‘바가지’가 아닌 ‘냉탕 바가지’를 고르고(「냉탕 바가지」), ‘인천’이 아닌 ‘동인천’을 선택한다(「동인천」). 독자들은 「고등어를 먹는 시간」을 읽으며 노르웨이로 떠나고, 「북어」를 보며 러시아를 여행한다. 시인은 우리에게 시를 읽는 시간만이라도 ‘지금, 여기’라는 현실의 중력重力을 내려놓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박현자는 「아날로그를 듣다」에서 “잠깐 꿈이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고, 「커피를 꿈꾸다」에서 “한때 바리스타를 꿈꾸었지”라고 고백한다. 그녀는 삶의 본질이 꿈과 다르지 않을 수 있음을 두 편의 시에서 보여준다. 삶은 일상의 무게에 늘 짓눌리지만 가끔 미세한 균열이 발생하고, 그곳에서 우리는 꿈이나 환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특별한 순간을 맞이한다. 그 순간이 죽음의 색채로 뒤덮인 비극이 될지 아니면 삶의 향기 가득한 희극이 될지 정해진 바는 아무것도 없다. 다만 우리는 박현자 시인의 시집 『아날로그를 듣다』를 읽으며 깨닫는다. 인간은 신神이 아니기에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꿈같은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여기의 삶을 꿈같이 여기며 매일매일 새롭게 시처럼 태어나야 한다. - 권 온(문학평론가) |
1부 냉탕 바가지·12 동인천·13 아트빌 B01호·14 폐업 중·16 자유공원·17 풀등·18 집으로 간다·19 신문으로 밥을 짓다·20 고등어를 먹는 시간·22 외투外套·23 고백·24 아날로그를 듣다·25 달팽이·26 북한산·27 장마·28
2부
이름값·30 항아리는 기억했을까·32 생인손·33 맨발 말하다·34 우물 점占·35 돋보기를 쓰고·36 연수리·37 바다가 문을 닫았다·38 4월에는 거리마다·39 커피를 꿈꾸다·40 벽·41 시를 쓰다가·42 철길이 있던 마을·43 운주사·44 텃밭의 주인이 되어·45
3부 오브제·48 부끄러운 나이·49 가로수 그늘에 서면·50 숯가마·51 말을 위한 연습·52 전쟁 이후·53 밤을 깎다·54 서각을 배우며·55 내비게이션에게·56 욕심의 깊이·58 수험생 일기·59 세탁기·60 나무도 아프다·61 백령도·62 북어·63
4부
배춧국을 끓이며·66 비정규직·67 옛날이야기·68 콩에게 묻는다·69 개꿈·70 밥·71 환절기·72 빈집증후군·73 용서에게·74 홀로 산행·75 공터 옆 고흐·76 지하도 입구·77 건망증·78 어떤 풍경·79 사람들은 모른다·80 해설 | 권온 꿈같은 삶에서 구체적인 깨달음을 노래하다·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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