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시’와 ‘역사’를 건너온 구명숙 시인은 이제 좀 더 정신적인 고처高處를 향해 나아간다. 이때 서정시는 스스로 깨달아가는 삶의 지혜랄까 원숙한 통찰이랄까 하는 것을 지향하고 선취한다. 이러한 자가自家 충격과 치유의 시학은 구명숙 시의 궁극이 담겨 있는 범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자기 충격 과정이 사사로운 개인으로의 퇴행을 뜻하는 것이 아님은 췌언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구명숙의 이번 시집이 시간예술로서의 요체가 만져지는 절편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의 시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사물은 비교적 역사적 구체성보다는 존재론적 원형성을 강하게 띠고 있고, 그는 어떤 구심적 주제나 원리에 의해 시세계를 구성하기보다는 그때그때의 순간적 기억을 남다른 진정성으로 언표해간다. 구명숙의 시는 자기 탐닉의 나르시시즘으로 기울지 않고, 탄탄한 지성적 절제를 통해 사물의 속성과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응시하는 균형을 매우 심미적인 형상으로 보여준다. 그의 시는 다양하게 산포된 자신만의 내면을 펼쳐내면서, 그 안에 ‘시란 무엇인가?’라는 메타적 질문을 깊이 산입하고 있다. 시인은 다양한 음색과 음감音感을 통해 그러한 과제에 골똘하게 응답해가면서, 비교적 단형으로 씌어진 시편들을 통해 따뜻한 성정과 깊은 자의식과 타자 지향의 상상력을 지극하게 들려준다. 이처럼 심미적 사유와 감각의 세계를 완결한 이번 시집의 성취를 넘어, 구명숙 시인은 또 다른 넓은 세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일곱 번째 시집이 거둔 이러한 생명 사랑과 인간 탐구의 시적 존재론에 대한 반향을 마음 깊이 고대하면서, 구명숙 시인이 펼쳐갈 다음 세계의 심미적 진경進境을 스스럼없이 소망해보게 되는 것이다.
-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구명숙의 시는 매우 다채로운 색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그의 시 세계에는 다양한 포인트가 있는데 우선적으로 주목해야할 영역으로는 ‘인간’을 꼽을 수 있다. 가령 “보물 말고/ 참 사람 한 분을/ 꼭 만나보고 싶다”라는 「서랍」의 진술이나 “목화솜 틀어 두툼히 꿰맨 이불/ 시집 올 때 지어주신 어머니 선물”이라는 「목화 꽃」의 구절을 보라. 「뭉클 5」의 “우리가 죽어 흙이 되어도/ 피고지고 살아갈 우리 피붙이들”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구명숙은 시 「어둠」에서 ‘출세’ ‘명예’ ‘오만’ ‘돈’ 등 세속에서 중요시하는 가치를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또한 그녀는 「뭉클 6」에서 물질적 풍요로 뒤덮인 21세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상실하고 있는 ‘나눔’과 ‘배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구명숙으로 새롭게 보여줄 시인의 시 세계가 기대된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전진하면서 넓고 깊게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권온(문학평론가)
구명숙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숙명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빌레펠트대학 어문학부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소카대학 초빙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방문교수를 지냈고,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만해 ‘님’시인상, 시와시학 우수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그 여자 몇 가마의 쌀 씻어 밥을 지어 왔을까』 『걷다』 『산다는 일은』 『하늘 나무』 『꽃들의 화장법』 『너, 피에타』 등이 있다.
1부 조선의 날개 서랍·12 몰입 속에서·13 삶과 유산·14 저 홀로·15 막막한 슬픔·16 시 1·17 시 2·18 시 3·19 시 4·20 조선의 날개·21 20190301·22 굴러온 돌·23 흐름·24 봄날·25 범어사 등나무·26 열반 2018·27 12월 끝날·28 나무들은 겨우내 옷이 없다·29 김칫독 ― 소빈 시인에게·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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