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 시인이 펼치는 시편들을 받치고 있는 구심력엔 나무가 뿌리내리고 있다. 물론 시집 제목도 『행복한 나무』로 명명했지만, 나무가 생래적으로 가진 생명의 기원을 포함하여 기독교적인 희생까지 안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시와 이야기가 시작되는 뿌리를 가진 나무는 소박하게도 나무의 화신化身인 새를 낳고 품고 키운다. 시인은 나무와 새와 함께 자유롭게 날면서 시의 영역을 땅과 하늘로 확장한다. 드디어 나뭇가지마다 시의 대상들이 꽃을 피우며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다. 생산적인 결실과 함께 시의 본색을 드러내는 무의미함조차 포섭하면서 편편이 시를 밀고 나가는 근력이 튼실하다. 더러는 기독교의 말씀으로부터 잉태한 시의 씨앗들이 자라고 있더라도, 일관되게 교조주의에서 벗어난 새의 날개로 자유롭다는 뜻이다. “마음에 새 한 마리 키우며 살고 싶다/ 언제나 들여다볼 수 있는 그곳에 둥지를 틀고 앉아/…/알 수 없던 나를 꼼꼼하게 일러 주는/ 선지자 같은 새 한 마리”(「새 한 마리 키우며 살고 싶다」 부분)는, 시인에게 나무의 또 다른 이름인 새는 선지자처럼 길을 인도하는 존재로 부각하고 있다. “이제 이 나이 먹고 보니/ 나의 십자가도 철이 들려는지/ 하나님이 안쓰러워집니다”(「나의 십자가」 부분). 세상 사람들이 나이 들었다고 나잇값을 하는 건 아니지만, 시인도 신을 안쓰럽게 보는 순한 눈과 시인 자신의 나무(십자가)도 성숙해지는 나이를 맞이하여, 마음엔 측은지심이 싹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어린나무가 자라서 울창한 나무가 되듯이 이기적인 사랑에서 더 큰 사랑으로 변모하며 이타적인 사랑으로 숙성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시 「행복한 나무」에서 사계를 살아 숨 쉬는 나무를 한번 보자. “내 키보다 높은 사다리를 딛고/ 감사의 열매를 따렵니다/ 옷자락에 쓱쓱 문지르고/ 한 입 베어 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고 한다. 시인은 앞서 봄여름을 통해서 물과 거름을 주고 노래하는 과정의 진실을 거쳐서 열매를 맺는 기쁨을 맛보면서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맞이한다. 나무를 향한 끊임없는 기도의 순례길에서 쏟아지는 눈물이라는 건, 시인의 각성과 더불어 신의 세례이며 축복이 아닐까. 이어서 “난 신기한 듯/ 이리저리 둘러보며/ 그에게 이름을 붙여 봅니다// 아브라함, 베드로 아니 바울/ 그리곤 웃어 버”린다는 시인은 계속하여 축복의 나무 심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사랑의 신념은 따뜻한 이웃과 당신의 사랑으로 흔들리지 않기에 믿음으로 나무는 불사의 힘을 가진다. 그러나 완결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시인은 행복한 나무를 위한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제 시인이 심어야 할 나무와 가꾸어야 할 나무 그리고 행복한 나무를 위한 축복의 여정이 두근거린다.
- 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