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 40년』은 군대를 떠나 공무원 사회로 진출한 사관특채 공무원 784명의 역사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 책의 집필을 맡게 된 순간부터 ‘유신 사무관’이라는 용어와 싸우기 시작했다. 누가, 왜, 언제부터 이 용어를 쓰기 시작했을까? 선입견(先入見). 선입견이 분명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 그리고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할.
최종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기 직전에 현대사 전공 대학원생들과 이 주제를 토의할 기회를 가졌다. ‘사관특채 공무원’보다는 ‘유신 사무관’이라는 용어가 친숙한 젊은 연구자들에게 이 주제를 소개한 이유는 이 제도와 그 제도가 배출한 사람들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를 소개하고 싶었고, 이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학생들의 시각은 예리했고, 거침없었다. 마치 자기 눈앞에서 일어난 일에 판결을 내리는 것처럼…
군대를 떠나 공무원 사회로 진출하여 국가와 사회에 봉사한 이들의 역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시각과 다른 해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조그만 실마리를 찾고 싶었다. 그래야 ‘유신 사무관’이라는 용어와 정면으로 싸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동안 이 주제를 다룬 연구 중 다수가 정확한 자료보다는 상황 논리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원과 연도 등 기초 자료가 틀린 경우도 많았는데, 이 제도를 도입한 정권과 이 제도를 통해 ‘특혜’를 받았다고 믿는 이들을 비난하는 글들이었다. 그러다보니 ‘군바리’나 ‘군화발’과 같은 자극적 용어를 사용하는 신문기사가 많았고, 일반 행정직 공무원으로 임용된 이들을 군대가 행정부를 감시하기 위해 보낸 ‘스파이’로 의심하는 학위 논문도 적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유신 사무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이들 중 일부는 ‘부주의’했으며, 의도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사관특채 공무원 제도에 대한 문서는 대부분 존안되어 있으나, 남겨진 자료는 두서가 없으며, 앞뒤가 맞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낡은 복사 용지 위에 남겨진 기표(記標)에서 역사적 콘텍스트(historical context)를 읽어내는 것이 문제였다. 가장 중요한 자료는 대통령기록관과 육군 기록물정보관리단의 문서고에서 찾아냈다. 최소한 1976년과 1977년의 시점에서 왜 이 제도가 도입되었는지에 대한 하나의 단초, 즉 기존의 시각과 다른 해석을 제시할 중요한 실마리가 발견된 셈이었다.
역사학을 전공한 집필진과 행정학을 전공한 감수 및 자문팀의 회의는 매번 살벌했으나, 항상 발전적 의견이 도출되었다는 점에서 생산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가지 사안을 보다 의미 있는 주제로 발전시키는 공동 연구를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발간되기 이전의 『한길 40년』은 한길회 회원들만의 역사였지만, 발간되는 순간 모두의 역사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서 보다 발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가 뒤따르기를 기대한다. 핵심 사료를 부록에 첨부하는 이유이다.
- 집필진을 대표하여 나종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