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숙 시인의 작품은 언구럭부리는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구김이나 때는 애최 없는 진솔 내음으로 풋풋하다. 얼러치는 소리의 결이 너무도 살가워서, 마룻대 상량문이 이냥 비치는 반들반들한 대청마루를 건너가는 여인의 흰 버선발 소리도 들려온다. 우리의 전통적인 한恨과 현대적인 정서가 아우르는 이미지가, 눈 밝은 이 아니면 쉽게 볼 수 없게 넌지시 시치미 떼는 농익은 솜씨로 날렵하게 여며지고 있다. 회화적인 상상력의 바탕에는 모성母性의 혈연적 운명과 자연自然의 뜻을 새기는 각고의 숭고미崇高美가 자리 잡고 있다. 문자文字와 서화書畵의 향香과 기氣가 자옥한 이 여류女流의 시적詩的 내향內向이 자못 매섭다. -오탁번(시인,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