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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7.05.31 조회수 24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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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 김요아킴 시집 <그녀의 시모노세끼항> 기사


[시인이 추천하는 오늘의 시집│그녀의 시모노세끼항]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2017-05-26 09:57:11 게재

김요아킴 시집 '그녀의 시모노세끼항'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집 속으로 찾아드는 것이다. 꾸역꾸역 몰려와 그냥 편하게 아무 자리에나 자리 잡는다. 시에 걸터앉는 이들도 여럿이다. 앉든 서든 눕든 다 제멋대로 자유롭다. 다들 그렇게 편한 자세로 자기 얘기들 늘어놓고 있다. 나는 그저 듣는다. 듣고 있다.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가 느껴지고 사람들이 보인다. 위로가 따로 없다. 조곤조곤 들려주는 삶의 곡절들은 아프고 안타깝지만 맘 상하진 않는다. 상했다면 오래 듣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소통하고자 찾아온 사람들이라 그럴까. 말이든 숨결이든 눈빛이든 한결같이 정겹다. 삶에 시달려 지나친 이들의 발자취가 이렇게나 진진하다니. 나는 연신 감탄하며 장터를 순례하듯 시집 여기저기 들여다본다. 아하, 게다가 장터 옆에선 야구 경기도 한창이다. 삶의 희로애락이 공과 배트의 궤적을 따라 펼쳐진다. 흥미만점이다. 그래, 내게도 한 방은 있을 거야. 다짐도 해보며 투수도 되고 타자도 되어본다. 

다급함은 없다. 서로 섞이되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느긋하고 한가롭다. "세상은 각기 다른 생의 지층으로 다져져 오롯이 존재한다." 이렇게 쓴 그의 '시인의 말'을 적이 실감하는 중이다. 그의 말을 가감없이 인정한다면, 이 시집은 아마도 각기 다른 생의 지층 탐색쯤 될 것이다. 이중에서도 유달리 내 귀를 쫑긋거리게 하는 시들이 있는데, 여기에는 주로 사회적 약자들이 등장한다. 

'순걸이 형'이란 시를 펼친다. "그는 지표면과 연신 타진할 막대기만 있으면 어디든 간다 했다// 봄날 나무껍질을 뚫는 싹의 몸살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코 끝에 서성이는 바람으로도 봄을 안다 했다// 곁에 누운 아내도 그림자만 보인다/ 그는 점자로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의 체온이 있어 고맙다 했다." 장애를 괴로워하는 이의 표정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눈물 겨운 긍정이 듬뿍 담겨 있다. 나는 이런 시선이 김요아킴의 시의 남다른 면모라 본다. 그는 장애인이라고 해서 특별히 동정과 연민을 얹어 놓지 않는다. 장애 갖지 않은 이들과 그들이 전혀 다를 게 없다는 뜻일 것이다. 

맞다. 다만 그저 조금 다를 뿐이다. 지표면 타진할 수 있는 막대기만 있으면 그도 어디든 다닐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시 '등산복을 입다'에 나오는 '그'는 장애 없는 사람 못지않게 활달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등산하듯 올라야 하는 산에서 사는 그는 등산복을 입고 다닌다. 등산복이 작업복인 셈이다. 그는 "해가 뜨면 어김없이 하산하여 수레를 끈다// 그가 몇 번의 생을 바꾼 공간은 왁자한 시장 한복판," 그가 "왼손으로 타는 커피 맛이 현란하다// 오가는 발걸음들이 펄럭이는 오른쪽 소매를 지켜본다." 이에서 보듯 그는 오른팔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삶이 지리멸렬해 보이진 않는다. 두 팔 가진 이들에 비해 약간 어려울 수는 있을 테지만, 그의 삶은 멀쩡하다. 현대사회를 산다는 것은 장애 유무와는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 도전 아닌가. 삶의 의지만 투철하다면 이같은 장애가 삶의 실패 요인으로 작용하진 않는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함께 사는 사회 구성원들이 반드시 편견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어울려 사는 데 조금 불편할 테니 돕고 살자, 하는 공감의 연대가 필요한 것이다. 열린 마음 없이 같이 어울려 살기는 어렵다. 인종차별을 넘어선 미국 프로야구선수, 재키 로빈슨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할 것이다. 김요아킴은 그를 기려 쓴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사코 그를 허락하지 않는 자리,/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이 역사라면/ 그 속엔 누런 흙먼지와/ 소금에 절은 그의 유니폼이 있었다"고.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4월 15일,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혁명적으로 모두" 그의 이름이었던 "42번이 된다." "그을린 사막의 선인장 같은, 수많은/ 재키 로빈슨이 스타디움으로 나"서는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그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편견부터 먼저 지워야 하지 않을까. 그와 같은 편견을 지우려 애썼던 사람, 노무현. 그가 그립다.


정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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